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국 본토 항공전 (문단 편집) === 런던 대공습 === >히틀러가 잿더미로 만들겠다던 이곳 런던에서 우리 국민들은 꿋꿋이 버티고 있습니다. >---- >― 윈스턴 처칠, [[비시 프랑스]]에게 8월 24일 야간 폭격이 이루어지던 어느 날, 독일군 폭격기 두 대가 길을 잃어 영국 상공에서 헤매다가 대공포화를 받게 되자 이런 상황에 처하면 언제나 그래왔듯이 급히 폭탄을 버리고 기지로 복귀했다. 문제는 이 눈먼 폭탄이 떨어진 곳이 런던 시가지였고, 여기 맞은 런던의 피해는 막심했다. 양측 수뇌부 모두 이는 야간작전중에 벌어진 사고 정도로 생각했고 실제로 8월 24일 이후로 런던에 대한 폭격은 없었다. [[윈스턴 처칠]]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전부터 벼르고 있던 차에[* 불타는 다른 도시들을 보고 주먹을 휘두르며 "이놈들아! 여기야! 여기라고! '''여기에 폭탄을 떨어트리란 말'''이야!" 라고 펄펄 뛰었다는 말이 있다.] '''"더러운 제리[* 독일군의 멸칭이다. 미국군을 양키, 영국군을 토미, 소련군을 이반이라고 불렀던 것과 같은 맥락.]들이 민간인을 공격했다!"''' 라고 주장하면서 베를린 폭격을 주장하였고, 이는 그대로 실현된다. 그동안 별다른 임무가 없었던 존 옥슬리 장군이 지휘하는 폭격기 사령부[* 있기는 있었다. 선전물 살포, 즉 [[삐라]] 뿌리기. 나치당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지지도가 하늘을 찌를 때라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시 폭격기 승무원들도 자신들의 임무에 회의감을 가져서 때로는 이게 어느 [[게슈타포]] 머리에 맞기라도 하면 그거라도 어디냐면서 뭉치의 끈을 풀지 않고 그냥 떨어뜨리기도 했단다. 그러나 이들이 선전물을 살포하기 위해 독일 상공을 비행하면서 얻은 경험들은 이후 독일에 대한 폭격 작전에 귀중한 도움이 되었으니 참으로 [[새옹지마]].]는 8월 25일 밤 베를린에 [[암스트롱-휘트워스 휘틀리]] 폭격기[* 폭장랑도 적고 속도도 370km/h로 상당히 느려서 여러모로 야간 삐라 살포 이외에는 쓸모가 없는 구식 폭격기였다.]로 야간 폭격을 시작하였다. 괴링은 두 번 다시 베를린이 폭격당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하였으나 다음날 또다시 폭격을 당했다. 여기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괴링은 평상시에 베를린의 방공망이 완벽하다고 호언장담하며 '''"베를린 상공에 적 항공기가 1대라도 나타난다면 나를 마이어[* 독일에서 흔한 성씨 가운데 하나이며, 한 마디로 성을 갈겠다는 얘기다.]라고 불러도 좋다."''' 고까지 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소리였겠지만 정말로 공습을 받아버렸으니 --마이어--괴링은 체면을 왕창 구기고 히틀러한테도 갈굼당한다. 한편으로 독일군 지휘부는 작전의 진행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일선에서는 한참 전부터 조만간 영국 공군은 전멸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속해서 영국 공군의 요격이 계속되고 있었고 이로 인한 피해도 상당한 수준이었기 때문. 또한 이전부터 케셀링은 런던 때리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었고 한스 에쇼넥 또한 영국 공군은 망하기 직전이니 런던을 공격하면 남은 영국 공군 전력을 전부 끌어내서 소탕할 수 있으며 사기 또한 확실히 죽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어젯밤, 영국 놈들은 베를린에 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하지만 이는 비겁한 영국 놈들은 감히 대낮의 독일 상공에 기어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을 뿐입니다. 그들이 폭탄을 떨어뜨린다면, 우리는 그 열 배, 백 배, 천 배의 폭탄을 떨어뜨릴 것입니다. 그들의 도시를 하나도 남기지않고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것입니다! 이제 둘 중 하나가 참혹한 패배자가 될 때가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사회주의 국가 제3제국이 아닙니다! 영국인들은 궁금해합니다. 왜 안 오지? 왜 독일이 오지 않지? 기다리라고 하세요. 기다리라고 하십시오. 그는 옵니다. 그는 옵니다! >---- >― 영화 《[[공군 대전략]]》,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 결국 독일군은 런던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게 되었고 히틀러는 런던을 공격하되 테러 폭격이 아닌 산업시설, 통신 시설등 주요 시설을 우선적으로 공격해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일단 런던 공격이 결정되자 예전부터 런던을 공격하자고 주장했던 케셀링은 이 결정에 열렬히 환영하였으나 제3항공군 사령관 [[후고 슈페를레]] 장군은 잔존 영국기가 900기는 될 것이고 Bf 109의 항속거리가 짧아서 위험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수의 의견이었고 런던을 폭격하면 자연스레 영국 전투기가 런던으로 몰려들 것이고 오히려 독일 전투기들이 영국 전투기를 일소할 수 있는 기회이고, 9월 21일로 예정된 [[바다사자 작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의견에 따라 9월 7일 런던 폭격이 결정되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런던대공습.jpg|width=100%]]}}}|| || 폭격을 위해 동부 런던 상공을 지나가는 He 111[br]{{{-2 9월 7일 당일의 사진이다.}}} || >파크 : 또 런던이군요... >다우딩 : 그래. 하지만 지금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네. 하지만 이대로 괴링이 런던을 계속 공격한다면... 우린 전력을 회복할 시간을 벌 수 있어. >파크 : 놈들이 우리 비행장을 노리는 게 아니니까 불만을 가질 수만도 없지요. >다우딩 : 더 중요한 건 말이야, 파크... 저들의 전투기 연료가 런던 위에서 10분 정도밖에 버틸 양만 남게 된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폭격기도 제대로 엄호를 받지 못할테고 말이야. '''공격 방향을 런던으로 돌린 건 독일의 가장 큰 실수가 되겠지!''' >-영화 《[[공군 대전략]]》 첫 런던 폭격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동안 독일 공군이 런던을 공격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남동부로 오는 줄 알고 있었기에 영국 공군이 전혀 예상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독일 폭격기 편대는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런던으로 갈 수 있었으며, 당시 방공시설들이 남동부에 주로 배치되어 있었기에 [[대공포]]의 위협도 거의 없었다. 그 결과 런던 곳곳이 불바다로 변하였다. 뒤늦게 도착한 영국 전투기들이 47기 정도의 독일기를 격추시킨 정도였다. 이를 영국군의 방공능력이 사실상 상실되었다고 판단한 괴링과 독일 공군은 크게 만족하였다. 9월 8일에도 역시 별다른 피해없이 런던을 폭격할 수 있었다. 한편 11비행단은 그동안 격전을 치르면서 입은 손실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한편 독일군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 폭격 작전으로 영국 육군 및 [[홈가드]]에겐 큰 혼란이 벌어졌다. 독일이 런던 폭격을 가하기 직전, 독일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안 영국군은 본토 방위 작전인 '크롬웰'의 1단계를 발령했다. 여기서 1단계는 "독일군이 침공할 가능성이 높아졌으므로 경계 태세를 최고 단계로 잡을 것" 이었다. 그런데 이 세부 내용이 홈가드에게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홈가드 대원들은 이 명령을 "독일군이 지금 공격해오고 있다" 라는 것으로 받아들여 버렸다. 이 때문에 열의가 지나치게 넘친(...) 홈가드 대원들이 경비하고 있던 다리나 주요 시설물들을 파괴하려 하고, 야간에 움직이던 가축 등을 독일군으로 오인하고 총을 쏘고 경보를 알린다며 마을의 종들을 울리는 등 큰 소란이 벌어졌다. 게다가 '"독일군이 공격하고 있다" 라는 홈가드의 보고를 받고 정규 육군부대도 덩달아 움직이는 등 큰 혼선을 빚었다. 이런 혼란은 다음날에야 진정되었다. 9월 9일, 마침내 어느정도 전력을 복구한 11비행단이 출격하여 해협상공에서 런던 직전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폭격기들은 폭탄을 아무 곳에나 투하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겨우 런던에 도착하고 보니 이번에는 엄청난 수의 영국 전투기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런던까지 날아오는 동안 남동부로 오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에 12비행단이 대편대를 구성할 시간이 충분했던 것이다. 영국 남동부를 방어할 때에는 쓸모없던 더글라스 베이더의 대편대 전술이 그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여기에 영국 공군 레이더 기지는 독일 공군이 퇴각하는 순간에 한번 더 전투기를 내보내곤 했으며, 제10비행단마저 이 공격에 가세하곤 했다. >그날은 제가 겪은 가장 끔찍한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런던 상공에서 기수를 돌렸어요. 그러다가 영국 전투기의 공격을 받았죠. 계기판에는 곧 빨간 연료 경고등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무전으로 이런 말이 들려왔죠 "엔진 정지! 반복한다, 엔진 정지!" 그리고 21대의 전투기에서 낙하산이 펴졌죠. 저와 다른 한 명은 다행히 구조되어 목숨을 건졌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익사했어요.''' >― 울리히 슈타인호퍼, 히스토리 채널 《2차 대전 최대의 공중전》 이 상황에서 Bf 109E 전투기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이들은 런던까지 가는 동안 11비행단의 집요한 공격을 상대해야 했고, 런던에서는 12비행단의 대편대를 상대해야 했다. 게다가 항속거리 문제로 인해 런던 상공에서의 체공시간은 5~10분에 불과했다. 그 사이에 영국 전투기를 제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고 연료 부족으로 눈물을 머금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지체를 했다가는 해협이나 프랑스 해협에 불시착해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또다시 11비행단이 물고 늘어졌다. 결국 전투기 부대와 폭격기 부대의 손실이 날로 증가하자[* 영화 《[[공군 대전략]]》에서 이 상황을 묘사했는데 초반에는 휀, 팔케, 한스 등이 농담 따먹기도 하고 낙하산 챙기고 내기 한번 떠보자면서 화기애애하던 독일 측이, 후반에는 휀이 겨우 살아돌아온 폭격기 승무원들을 보며 망연자실하거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전사한 동료들(특히 팔케와 한스)의 빈 자리를 침통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나오는 등 거의 초상집 분위기가 된다.] 독일 공군은 9월 11일 주간 폭격을 중단하고 야간 공습으로 전환한다. 그래서 손실은 줄었으나 영국 전투기의 씨를 말린다는 계획 자체가 틀어져버렸다. 이후 런던에 대한 야간 공습은 70일 가량 계속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